‘재개발조합 직접설립제도’ 서울시 설익은 행정이 주민갈등 부추겨
‘재개발조합 직접설립제도’ 서울시 설익은 행정이 주민갈등 부추겨
과도한 공공개입에 확산되는 우려 목소리
  • 최진 기자
  • 승인 2023.10.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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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획 재개발 현장들 신청 찬반놓고 대립격화 
모든 사업 공공이 장악… 문제 발생해도 대책없어

구청장이 외부인사를 주민협의체 위원장에 선출·해촉
추진위 방식과 차별화 위해 주민투표권 강화해야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서울시가 정비사업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꺼내든 ‘조합 직접설립제도’가 정비사업 일선에서 주민갈등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시는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해 추진위를 생략하고 조합설립까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현장에서는 공공이 사업초기부터 과도한 공공성을 주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제도시행 찬반을 두고 주민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정비업계는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제기되는 각종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는 것이 제도 활성화보다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의 당초 계획, 속도·비용·전문성 지원하는 ‘서비스’행정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을 추진하는 재개발 후보지들은 최근 서울시가 활성화에 나선 ‘조합 직접설립제도’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일부 주민들이 서울시 홍보내용을 토대로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신청하자고 나서면서 주민혼선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 직접설립제도는 공공지원자(구청)와 주민협의체가 추진위원회 구성절차를 건너뛰고 곧장 조합설립을 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해당 제도가 추진위 구성과 승인절차를 생략해 사업기간을 단축하고 소요되는 운영비를 절약할 수 있다며 홍보자료를 배포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서울시가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홍보하는 요소는 △조합설립까지의 사업기간 단축 △추진위 운영비 절감 △사업 초기부터 전문적·효율적 사업추진 등 3가지다. 서울시는 정비구역지정 이후 조합설립까지 통상적으로 재개발은 3년2개월이, 재건축은 3년9개월이 소요되는데,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하면 이 기간이 평균 1년 3개월로 2년 가량 단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추진위 운영에 필요한 2억~7억원 가량의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어, 소유자들의 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구청과 외부 전문가가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협의체 구성에 참여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업 초기부터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추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책 홍보 포인트다.

▲현실은 사업 초기부터 공공이 주도권 장악… 주민투표권 없어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해당 정책이 주민의사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협의체 구성 권한이 철저히 공공지원자인 구청장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민협의체 위원장을 선출·해촉하는 모든 권한이 공공지원자인 구청장에게 있다. 구청장은 변호사나 도시계획업체 대표 등 외부 인사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협의체 위원장을 선출한다. 선출된 위원장을 해촉하는 권한도 구청장에게 일임되기 때문에 만약 위원장이 직무유기를 하거나 사업에 문제가 발생해도 주민들은 법리적으로 위원장을 해촉할 권한이 없다.

또 협의체위원 역시 구청장의 지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민협의체 부위원장 선출 이외에는 대부분 권한이 공공에 쏠려 있다.

주민들은 공익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공이 사업 초기부터 결정권을 휘두르기 때문에 자칫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자산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과 공익을 중시하는 공공이 지속적인 대립과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가는 방식인데, 사업기반이 공공에 의해 설계된다면 조합설립 이후부터 각종 변경절차로 인해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협의체 위원장으로 지명된 외부 인사의 경우 지위와 권한이 모두 공공에서 위임받기 때문에 주민의견보다는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민들의 재산권 극대화보다는 공공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공보행통로나 외부인 이용시설, 대규모 기부채납 시설 등 최근 신통기획에서 논란이 되는 공적부담 요소들도 조합 직접설립제도에서는 논스톱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개발 세력다툼 빌미로 전락… “사업지연 요소만 늘었다”

조합 직접설립제도의 홍보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접목하면 사업기간이 1년3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기간단축에 대한 근거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라며 분석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행사례 자체가 빈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조합 직접설립제도는 현재 3곳의 중소형 재건축단지에서만 시행된 바 있다. 재개발 현장에서는 적용사례가 아예 없어, 사업 및 구성원 등의 문제에서 해결책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조합 직접설립제도만 공공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편향된 홍보방식에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공공지원제도는 조합 직접설립제도를 위한 주민협의체 방식은 물론, 주민들이 설립하는 추진위 방식도 정비업체 선정 등 공공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구청이 정비업체를 공개입찰로 선정하는 등 사실상 공공지원제도 속에 추진위와 주민협의체가 함께 있는 것인데, 주민협의체의 자금지원을 부각하면서 추진위만 비용부담이 크다는 식의 왜곡된 홍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북구의 한 재개발 추진준비위원장은 “소수 현장에서 나타난 일부 긍정적인 데이터만을 가지고 정책을 과대평가해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은 정비사업에 혼선을 가중시키는 악재로 볼 수밖에 없다”라며 “서울시는 주민들의 선택지를 늘려주는‘서비스’수준으로 제도를 홍보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기존 주민단체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외부 세력에게 필요한 빌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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